#1. 셧다운은 누가 만들었나: 거부권·예산의 힘겨루기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의회 관계는 한 나라의 ‘의지’가 '실제 정책'으로 변환되는 관문입니다. 대통령이 어떤 계획을 내놔도, 의회에서 법과 예산의 틀을 얻지 못하면 제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의회가 만든 제도와 심사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추진력을 조정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번 뉴스에서 왜 어떤 법안은 달리고 어떤 법안은 멈추는지, 왜 어떤 충돌은 예산에서 폭발하고 어떤 갈등은 인사·청문회나 탄핵으로 번지는지를 읽어내는 일과 같습니다.
오늘의 글은 셧다운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하여, 대통령과 의회 관계를 가볍게 알아보겠습니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미국 정치 과정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디테일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Ⅰ. 설득과 입법
대통령의 설득은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의회 안, 다른 하나는 의회 밖입니다. 의회 안에서는 상임위와 지도부를 상대로 문구를 다듬고(수정안), 일정과 표 계산을 재설계하는 거래의 기술이 핵심입니다. 의회 밖에서는 국정연설과 전국 순회 연설, 미디어 노출을 통해 여론을 움직여 의원들의 정치적 계산을 바꾸려 합니다. 린든 B. 존슨은 이 둘을 동시에 구사해 입법을 밀어붙인 인물로 자주 언급됩니다.
입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보통 취임 초의 ‘허니문’에 높아집니다. 허니문은 야당도 새 정부에 일정 기간 관용을 보이는 정치적 분위기를 뜻합니다. 여기에 대통령과 양원이 같은 당인 ‘단점정부’라면 길이 더 닦입니다. 반대로 대통령과 하나 이상의 의회 구성원이 다른 당인 ‘분점정부’에서는 거래의 정밀도가 승부를 가릅니다. 오늘날에는 양극화가 심해져 상원의 필리버스터가 큰 문턱이 됩니다. 필리버스터는 본회의 표결을 늦추거나 막는 ‘지연 전술’을 말하고, 이를 끝내려면 보통 60표(토론종결 표결)가 필요합니다. 이 규칙 때문에, 한 정당이 60석 이상을 차지할 일이 없는 미국에서는 초당적 설계가 없으면 법안이 쉽게 멈춥니다. 다만 외교·안보 분야는 대통령이 정보와 재량을 많이 쥐고 있어, 같은 갈등이라도 의회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장면이 자주 나타납니다.
Ⅱ. 거부권과 예산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에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은 먼저 ‘거부권 의사표시(veto threat)’로 협상력을 높입니다. 이는 “이대로면 거부하겠다”는 신호로, 의회가 문구를 더 강하게 또는 더 약하게 손보게 만드는 압박 장치입니다. 정식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은 대통령에게서 의회로 되돌아가고, 의회가 법을 살리려면 상·하원 각각 3분의 2로 다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의회가 휴회 중일 때 대통령이 10일(일요일 제외) 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는 ‘포켓 거부권’도 있습니다.
여기서 독자가 자주 헷갈리는 개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라인 아이템 거부권(line-item veto)’은 대통령이 통째가 아니라 예산 항목 등 특정 부분만 골라 지우는 권한을 뜻합니다. 일부 주(州)지사는 지금도 갖고 있지만, 연방 차원에서는 1996년에 한시적 법으로 도입되었다가 1998년 연방대법원 판결(Clinton v. City of New York)로 위헌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현재의 연방 대통령은 부분 선택식 거부권을 쓸 수 없습니다. 대신 대통령은 서명 성명(signing statement)으로 “이 조항은 이렇게 해석·집행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밝힙니다. 법 그 자체를 뒤집는 도구는 아니지만, 행정부의 집행 지침을 공개해 법의 실제 작동에 영향을 줍니다. 이 전 과정에서 대통령과 의회는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려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의 프레임 선점을 위해 여론전을 병행합니다.
예산은 더 노골적입니다. 지갑은 의회가 쥡니다. 예산이 제때 배정되지 않으면 정부 기능이 일부 멈추는 ‘셧다운’이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완전히 수동적인 건 아닙니다. 사전 단계에서 관리예산처(OMB)가 대통령의 우선순위를 반영한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합니다. 사후 단계에서는 배정과 집행의 미세 조정으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닉슨 시기 논란을 계기로 1974년에 제정된 ‘예산집행통제법(Impoundment Control Act)’은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이미 배정된 예산을 사실상 ‘회수’하지 못하도록 했고, ‘연기(deferral)’ 역시 보고와 승인 절차의 통제를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요약하면, 예산에서 의회는 구조적 우위를, 대통령은 설계와 집행의 디테일을 무기로 삼습니다.
Ⅲ. 기관 장악과 탄핵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인사와 지휘를 통해 기관을 장악합니다. 하지만 의회는 청문회, 감사, 자료 요구, 예산 조건 등을 통해 그 장악력을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위기 상황이 아니고 전문성이 급한 사안이 아니라면, 공개 청문회만으로도 행정부의 신뢰도를 낮춰 정책 수정이나 인사 교체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더 멀리 가면 1950년대의 ‘브리커 수정안’처럼, 조약과 행정협정의 효력이 헌법과 주법을 뛰어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결국 근소한 표 차로 무산됐지만, 의회가 대통령의 대외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묶으려 한 대표적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관계의 최후방에는 탄핵이 있습니다. 하원이 단순 과반으로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상원에서 3분의 2가 유죄를 선고해야 대통령은 직을 잃습니다. 현대의 탄핵은 ‘중대한 범죄’라는 법률 기준 못지않게, 그 순간의 정치적 정당성 투표라는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앤드루 존슨은 상원에서 한 표 차로 살아났고, 빌 클린턴은 여론의 역풍 속에 무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사안과 1월 6일 사태로 두 차례 탄핵소추를 받았지만 모두 상원에서 무죄가 되었고, 임기 말 책임을 피할 수 있느냐를 두고 ‘1월 예외’ 논쟁을 남겼습니다. 탄핵은 법과 정치가 가장 고농도로 만나는 지점이며, 대통령–의회 관계의 긴장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합니다.
이제 용어가 낯설어도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설득과 입법의 문턱, 거부권과 예산의 수싸움, 기관 장악과 탄핵의 최후 제동까지, 세 측면은 서로 맞물립니다.
앞으로 한두 가지 실제 사례를 뉴스에서 접하고 이 틀에 끼워 넣어 보시면, 갈등의 원인–경로–결과가 훨씬 또렷하게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은 써먹을 때 가장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