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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맛/역사학의 맛

#2. 역사학의 ‘시대 구분’, 쉽게 이해하기

by 오정록 2025. 10. 13.

#2. 역사학의 ‘시대 구분’, 쉽게 이해하기

여러 도시나 인물이 하나의 파노라마로 이어진 합성 이미지.
여러 도시나 인물이 하나의 파노라마로 이어진 사진. '다양한 근대'의 비유. (Source: Freepik)


I. 연대기적 시간과 역사학의 시간

 

역사책에 보이는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같은 구분은 자연이 스스로 그어 준 선이 아닙니다. 달력처럼 일정하게 흐르는 연대의 시간은 “1800년”, “20세기”처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숫자의 흐름입니다. 반면 역사학에서 말하는 시대는 현재의 연구자가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묶음입니다. 같은 연대라도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 구분은 언제나 현재의 질문과 연결됩니다. 무엇을 중요한 변화로 볼지, 어디에 선을 그을지, 누구의 경험을 중심에 놓을지에 따라 서술이 달라집니다. 이 점 때문에 시대 구분에서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임의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으려면, 자료로 확인할 수 있고(사실성), 이유의 연결이 분명하며(논리성), 다른 사람이 다시 검토해도 납득 가능한 수준의 일반화가 되어야 합니다(개연성). 요컨대 연대는 숫자의 시간, 시대는 의미의 시간이며, 역사학은 그 의미 부여를 근거 위에 세우려는 시도입니다.

 

 

II. 무엇을 함께 묶을 것인가: 기준, 검증, 그리고 예시

 

같은 시기를 “동시대”로 묶으려면 공통의 성질이 필요합니다. 대체로 정치의 틀(왕조 교체, 식민 지배, 민주화), 제도와 경제 구조(신분·토지·세금의 변화, 산업화·도시화), 생활 방식과 기술(인쇄·전기·인터넷의 보급), 사상과 문화의 분위기(개인의 권리, 민족주의, 성평등) 같은 요소가 겹쳐 움직일 때 설득력이 커집니다. 한 가지 신호만 보고 성급히 경계를 긋는 순간, 도식화의 위험이 생깁니다.

한국사의 “근대”를 예로 들면 출발선이 다양합니다. 1876년 개항을 기준으로 잡으면 바깥 세계의 압력과 국제 질서의 변화를 강조할 수 있지만, 생활과 제도가 곧바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1894–95년 갑오·을미개혁을 기준으로 삼으면 내부의 제도 개편을 근대의 시작으로 설명하기 좋지만, 변화가 얼마나 깊고 지속적이었는지는 별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1910년 병합을 분기점으로 삼으면 정치·경제·사회가 강제로 재편된 사실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지만, “근대=식민지”로 단순화하는 오해를 경계해야 합니다. 해방 이후나 1960–70년대 산업화를 근대의 결정적 전환으로 보는 관점은 생활 세계의 급격한 변화를 설명하기에 유리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억압과 불평등을 어떻게 다룰지 답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디에 선을 긋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선인가를 말할 수 있느냐입니다. 좋은 시대 구분은 첫째, 어떤 기준을 중시했는지 분명히 밝힙니다. 둘째, 그 기준이 실제 자료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 줍니다. 셋째, 맞지 않는 지역·계층·성별의 사례를 언급해 한계를 인정합니다. 넷째, “결정했다”처럼 과도한 단정보다 “크게 기여했다”, “맞물렸다”처럼 강도를 조절해 표현합니다. 마지막으로 경계를 칼날처럼 자르기보다 띠(band)로 이해하면 현실의 어긋남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주관은 남기고 임의성은 줄일 수 있습니다.

 

 

III. 포스트모던 이후: 큰 구분의 위험, ‘다양한 근대’의 장점과 한계

 

최근 연구 동향은 거대 서사를 경계합니다. 같은 연대라도 사람들의 경험은 지역·계층·성별에 따라 크게 달랐고, 시대 이름 붙이기는 종종 권력의 시선을 따라가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판 덕분에 여성사, 이주와 디아스포라, 식민지 경험 등 이전에 소외되던 주제가 중심부로 올라왔습니다. 그 결과 “근대” 역시 산업의 근대, 제국의 근대, 식민지의 근대, 생활의 근대처럼 여러 얼굴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포스트모던의 분명한 성과입니다.

다만 모든 것을 “다양한 근대”로 부르기만 하면 말이 헐거워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내용이 크게 다른데도 같은 라벨을 붙이면 독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근대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때의 간단한 해법은 글의 첫머리에서 필자가 말하는 ‘근대’의 뜻과 범위를 한 문장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글에서 근대는 정치 제도와 시민권의 변화를 중심으로 1894년부터 1919년까지를 가리킨다”와 같이 기준·기간·초점을 미리 제시하면, 다양한 근대를 말하면서도 의미가 흐려지지 않습니다. 큰 구분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기준을 드러내고, 자료로 뒷받침하고, 반례를 인정하며, 단정의 세기를 조절하는 운영 원칙을 지키면 됩니다. 그러면 “근대”라는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때는 과감히 다른 이름을 쓰고, 붙일 만할 때는 뜻을 분명히 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시대 구분은 선 긋기의 기술입니다. 연대의 숫자를 토대로 현재의 질문을 밝히고, 무엇을 함께 묶을지 기준을 제시하며, 그 선택의 근거와 한계를 함께 적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면 거시적 구분의 장점(큰 그림)과 미시적 시선의 장점(다양한 목소리)을 함께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학이 권하는 길은 분명합니다. 단단한 사실에 기초하되, 시선에 민감해지는 것. 숫자의 시간과 의미의 시간을 겹쳐 읽을 때, 시대라는 이름은 설명력을 얻고 과장은 줄어듭니다.